중국 수나라 이전과 이후 !  
 

유명한 유비.관우.장비가 주인공인 삼국지에서 지략의 대명사 제갈량의 일생의 라이벌 사마의(중달)의 손자 사마염이 세운 나라인 서진을 멸망시킨 수나라. 


사실상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184년 부터 혼란한 중국을 403년 만인 589년에 통일한 사람이 수나라의 시조 문제입니다. 


그리고 589년... 동북아시아에는 수나라의 통일로 인해 혼란이 일어날 징조가 보입니다. 그것은 통일 왕조의 등장으로 인해 요서지방의 세력다툼인데요.


요서지방을 중국이 분열되어있을때는 고구려가 지해하에 두고 있었는데, 중국이 수나라에 의해 통일되면서 고구려와의 세력다툼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세력다툼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요서지방의 영주(지금의 조양)의 위치와 역활때문입니다.


이곳 영주는 위 사진을 보시면, 거란, 말갈, 고구려 즉, 중국입장에서 동북방 오랑캐의 중국 본토에 대한 진입에 관문의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동북방으로의 진출에대해 수나라입장에서도 꽤 중요한 지점이지요. 그래서 지금은 인구 80만정도의 작은 도시로 몰락했지만, 당시 영주는 교역의 중심지로서 경제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저 지역이 수나라 통일당시 고구려의 영향권안에 있었던 것이지요.

수나라 통일 당시 중국본토에 군사적으로 위협이 되는 세력은 대략 2개 정도가 됩니다. 하나는 돌궐인데요


위 지도에 표시된 어마어마한 세력권이 보이시죠? 저 세력권이 돌궐(투르크)이 가장 강성했던 시절입니다. 저런 돌궐이 당연히 수나라에 위협이 되었겠죠. 근데 수나라 통일 당시 돌궐은 동서로 분할되어있었습니다. 수나라는 이를 이용해서 동돌궐과 군신의 관계를 맺는데 성공합니다. 이제 남은 것이 요서지방을 위협하는 고구려입니다.

수 문제는 고구려에게 한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누가 봐도 한판 붙자는 이야기죠... 이 편지를 받은 고구려는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화평할 것인지 한판 붙을 것이지 어마어마하게 논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강이식 장군 !  
 


강이식 장군이라는 분이 당시 고구려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생존 연도 부터 자세한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수나라 문제의 도발에 가까운 편지가 도착했을때, 즉, 고구려 영양왕 당시에 장군이었습니다. 


이분은 일단 진주 강씨의 시조이십니다. 묘는 만주땅에 있습니다. 그 진주 강씨의 족보에는


수나라의 1차 침공당시 강이식 장군께서는 고구려의 병마원수였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실 이부분이 가장 문제입니다. 병마원수라는 직함... 이게 고구려에 없는 직함입니다. [관련글] 병마라는 글자가 들어간 직함은 고려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듯합니다만, 일단 고구려를 다루는 어떤 책에도 병마원수라는 직함이 없다는 것이지요. 임시직일 수도 있습니다만, 원체 기록이 없어서... 진주강씨의 족보를 제외하고 나면,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상고사라는 책에서 강이식장군의 기록을 찾을 수 있다고 하니.. 밝히긴 어려운 부분인가 봅니다. 다른 이야기로 동아대백과사전의 내용으로, 본래 중국 예부랑 문성의 아들로 병마원수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적의 모함으로 고구려에 귀화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뭔가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만주에 있는 묘는 현재 비석이 사라지고 없다고 합니다. 문화혁명당시 중국이 없애버렸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비석을 바치고 있던 거북이 모양의 좌대만


이렇게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비석에는 본래


병마원수 강공지총이라고 적혀있다고 합니다. 또한 강이식 장군의 묘가 있는 지역의 이름이


고려영자촌 원수림이라고 하며, 이 지역 노인들은 분명 고구려 장군의 무덤이라고 어릴때부터 들으며 자랐다고 이야기를 한답니다.

여하튼 수 문제의 편지에 대해 강이식 장군은


붓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영양왕은 정병 5만을 이끌고 임유관을 선제 공격하도록 명령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전쟁이 시작됩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전쟁 !  
 

강이식 장군이 이끄는 5만의 고구려군은 598년 임유관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수나라는 문제는 이를 빌미로 30만군대를 동원합니다.


수 문제는 탁군에서 출발하는 육군과 동래에서 출발하는 수군. 이렇게 수륙양면전을 준비하는데요. 이 1차 전쟁의 패인을 중국쪽 기록에는 수군은 태풍으로, 육군은 장마로 인해...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 다릅니다. 부경대학교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 교수님에 의하면


당시 기후를 조사했을때


7,8월에 강수량이 많긴 했지만, 전쟁중이었던 9월엔 만주지역은 강수량이 작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래 행사처럼 대체로 정확한 시기에 오는 태풍과 장마를 예측하지 못하고 전쟁을 했다면 그것은 통일을 이루어낸 사람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입니다. 

육군이 질병과 보급의 문제로 굶어 죽은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그 이유는 수군 때문입니다. 당시 수나라는 수군이 평양을 치러간다고 소문을 내서 고구려의 병력이 분산되기를 기대한 모양입니다만, 강이식장군은 실제로 이 수군이 육군에 대한 보급의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던 모양입니다.


수나라의 수군이 지나가는 곳에서 수나라의 수군을 대파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보급선을 끊은 다음


육군이 스스로 괘멸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왜 점령할 곳도 아닌 임유관을 영양왕과 강이식 장군은 공격한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한 번 상상해 보았습니다.

1. 수나라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고구려는 전쟁을 통해 수나라의 정복 야욕을 분쇄시켜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2. 그런데 영주를 지나 중국본토로 들어가는 건 너무 고구려에게 부담이 된다
3. 그렇다고 수나라에게 시간을 줘서 전쟁 준비를 철저히 끝내고 들어올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4. 그래서 임유관을 격파함으로서 수나라를 격동시킨다.
5. 수나라는 장마철이고 습지인 요소지방을 보급부대가 지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수군이 보급을 책임지고 장산군도 쪽으로 들어오고 육군은 때를 맞춰 그 지역을 제패한다는 작전을 수립한다.
6. 고구려는 수나라의 작전을 간파하고, 수군을 먼저 격파하고, 육군의 자멸을 기다린다.

이것이 고구려의 전략이 아니었을 까요????

여하튼 고구려와 수나라의 1차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위키디피아에는 이 전쟁을 임유관 대첩이라고 하여 간단히 표로 요약해 두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 글은 KBS 역사스페셜을 보고 위키디피아 및 기타 인터넷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은 KBS 역사스페셜과 위키디피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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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핑구야 날자 2010/04/21 08:06

    대한민국의 당을 찾을 날이 올까요....있는 당도 동북공정인가로 잠식당하고 있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 PinkWink 2010/04/21 08:21

      아침을 일찍 시작하시는군요^^
      동북공정... 그리고 우리의 역사인식...이 안타깝습니다.ㅜㅜ

  • 빨간내복 2010/04/22 02:47

    냉탕과 온텅을 오가는 느낌이 이런걸까요? 복잡한 수식의 공업수학중에 피어나는 역사이갸기가 첨엔참 이질적이었는데 지금은 PinkWink님의 고유스타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PinkWink 2010/04/22 09:07

      그..런가요...??
      저야 뭐..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내가 공부한 건 올려볼까??? 라는 생각을 가져버려서 말이에요^^

  • landashy 2010/08/30 21:23

    전쟁에서 이겨도 땅을 얻고, 민심을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듯 합니다.. 결국 아주 적은 피해로 대군을 격파한 저 전쟁은 고구려에게 소모적인 전쟁이었을 뿐이니까요.

    • PinkWink 2010/08/31 09:25

      고구려 후기의 승리한 전쟁들이 전략적으로는 국가의 목숨을 구하진 못했으니 아쉽긴 하지만, 힘없이 무너지는 여타의 멸망위기의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그나마 위안(??)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의 전력적 열세를 만회하기에는 힘들었던 상황이 슬프긴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