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극단적으로 딱딱한 글만 쓰다가, 갑자기 이런 글을 쓰니까 상당히 어색하긴 합니다.
사실, 블로그 내용이 외계인들이나 볼 법한 내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서 평소 많은 관심을 가져왔던 영화에 대한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나중에는 게임이나 책, IT 등에 대한 이야기도 써 보고 싶습니다만, 일단 영화로 시작하겠습니다.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
<소스코드 포스터>
첫 글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소스코드입니다.
2011년에 개봉한,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본게 정확히 2011년 5월 5일이었는데(그날은 하루를 정말 다이나믹하게 보내서 똑똑히 기억합니다.) 벌써 3년 가까이 지났네요.
영화를 볼 때, 제가 찾아서 봤다기보단 추천을 받아서 봤기 때문에 딱히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는 한동안 소스코드 생각뿐이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헬리콥터 조종사인 콜터 스티븐스 대위는 어느 날 갑자기 달리는 열차에서 깨에납니다. 전혀 생소한 환경에서 전혀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걸어오고, 자신은 숀 펜트리스라는 사람이 되어있는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중 열차가 폭발에 휩싸입니다.
스티븐스 대위는 죽음과 동시에 검은색 캡슐에서 깨어나고, 스크린을 통해 자신을 굿윈이라고 소개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굿윈은스티븐스 대위를 막무가내로 열차로 되돌려 버립니다.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된 후, 스티븐스 대위는 이 열차 폭탄 테러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 일이 테러 피해자의 뇌 속에 남은 기억을 통해 새로운 평행우주를 창조해 그 속에 스티븐스 대위를 집어넣고 테러범을 추적하는 '소스코드'라는 임무임을 알게 됩니다.
스티븐스 대위는 결국 테러범을 찾아내지만 대위 본인은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뇌에 전극이 꽂힌 채로 누워있는 신세였고, 소스코드 프로그램은 그의 머릿속에 심어진 환상이었습니다. 그는 굿윈에게 자신을 소스코드 속으로 보낸 후, 단기기억이 끝나는 8분 후 자신의 생명유지장치를 꺼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이 8분동안 폭탄을 정지시킨 후 테러범을 찾아 검거시키고, 8분이 지난 후에는 소스코드가 새로운 평행우주로 갈라져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주인공이 갇힌 캡슐의 모양. 결국 이것도 환각이죠.>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글의 제목과 같이, 신선한 설정, 치밀한 전개, 깔끔한 결말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제이크 질렌할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조이는 연출도 한 몫을 했지만, 위의 세 가지가 가장 주요했다고 봅니다.
먼저, 신선한 설정입니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통해 세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으로 사람을 넣는다는게 정말 신선했습니다. 오히려 양자역학 주저리주저리 하는 말을 집어넣지 않았으면 더 재미있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큰 상관 없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SF 코미디 소설을 보면, '모든 관점 볼텍스'라는 장치가 나옵니다. 이는 이 우주의 모든 물건은 상호작용한다는 데에서 착안하여, 거꾸로 케이크 한 조각에서 전 우주의 모든 물질과 상호작용한 정보를 추적하여 우주를 재구성하고, 이 정보를 시술자의 뇌 속에 집어넣으면 시술자는 자신이 이 우주에서 얼마나 조그만 존재인지 알게 되어 엄청난 고통과 함께 죽게 되는 장치입니다. 이 영화의 '소스코드'는 마치 '모든 관점 볼텍스'와 비슷합니다. 정보를 가져오는 주체는 다르지만, 하나의 우주를 창조해낸다는 것이 비스한 점입니다. 그리고 이 설정을 확대해 결국 영구적으로 분리된 평행우주를 창조해버리는 것이 영화의 신선도를 크게 높여줍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영화 포스터. 아스트랄 그 자체입니다.>
둘째로 치밀한 전개입니다.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설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모든게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알 수 없죠.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라 관객이 주인공에게 더욱 몰입할 수 있죠. 하지만 관객이 반복되는 전개에 적응해가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소스코드'에 대한 정보를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콰광!
마치 하나의 잘 만든 노래같습니다. 관객의 이해도와 주인공의 이해도, 전개가 너무나 유기적으로 잘 엮여 기승전결을 이뤄냅니다. 그 과정에서의 완급 조절이 너무나도 절묘합니다.
복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은 복선이라니, 정말 작가에게 뽀뽀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깔끔한 결말. 저는 결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결말이 깔끔하지 못하면 그건 절대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개도 전개지만 아이언맨 3의 결말은 참.... !%#꽥*$$@?)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오픈엔딩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스코드의 엔딩은 정말, 제가 손꼽는 최고의 엔딩입니다.(다른 하나는 세 얼간이) 영화의 주된 이벤트는 깔끔하게 끝나지만, 주인공에게는 무한한 미래가 열려있죠. 해피엔딩으로 닫힌 결말을 만들면 진부하고, 배드엔딩으로 닫힌 결말을 만들면 우울하고, 해피엔딩으로 열린 결말을 만들면 화장실 갔다가 밑 안닦고 나온것 마냥 찝찝하고, 배드엔딩으로 열린 결말을 만들면 그저 암울할 뿐이지만, 소스코드의 엔딩은 정말 깔끔하면서도 유쾌하고 희망적입니다.
저는 2011년에 이 영화를 한 번 본 후, 몇달 전에 다시 한 번 봤는데요, 처음 볼 때는 주 스토리라인에 너무나 집중하는 바람에 잘 느끼지 못한 아버지와의 관게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면서 영화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처럼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 정말 매력적입니다.
한 가지,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금속 엉덩이(...)같은 구조물이, 소스코드에 진입하고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보여졌다는 점입니다. 소스코드에 오고가는 과정에서 나온 장면들은 대부분 대위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왜곡되어 보여졌는데요, 그러면 이 영화의 결말까지도 이미 예측되었다는 말일까요? 이런 소소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에 영화에 대한 기억이 더 오래도록 남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금속 엉덩이 모양 구조물>
영화에 대한 글을 이 한 마디로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Everything is going to be ok."